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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알 故한인택 구의동 고등학생 피살사건 마지막 음성 공개 생각한대로 들은 수사기관의 오판 주유소 그리고

by Xmr 20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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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피살사건, 마지막 음성 공개

'생각한대로 들은' 수사기관의 오판?

 

 

구의동 고등학생 사건의 전말이 공개됐다.

28일에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마지막 통화 속 다잉메시지 - 구의동 고등학생 사건'이라는 부제로 구의동 고등학생 사건에 대해 조명했다.

지난 2005년 9월 6일 구의동에서 당시 고등학교 1학년 한군이 피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을 지나던 행인은 그를 발견하고 곧바로 신고했으나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리고 경찰은 사망 전 112에 신고 전화를 했던 음성을 확인하고 범인을 추적했다.

인택군이 쓰러진 곳에서 약 90m 떨어진 곳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발견했지만 지문을 찾지는 못했다. 이에 경찰은 탐문 수사 결과 같은 학교의 동급생 김군과 정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고 목격자에게 이들이 목격한 인물이 맞는지도 확인했다.

목격자의 증언과 임군이 신고 전화로 김군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판단한 경찰은 김군이 범인이라 확신했고, 며칠 후 김군은 정군과 함께 모의해 임 군을 칼로 찌르고 도주했다는 자백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말을 바꾼 김군과 정군, 정군은 곧바로 무혐의로 풀려났고 김 군은 재판까지 갔지만 무죄판결을 받으며 석방되었다.

이에 임군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는 범인을 찾아달라고 제작진에 도움을 요청했다.

사건 당일 평상시대로 아들과 통화했던 어머니, 그는 "밤 11시 42분 아들에게 전화를 했고, 버스를 탔냐고 묻자 가고 있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경기도에 거주 하며 서울의 고등학교에 통학했던 임 군의 귀가 시간은 늘 늦었다. 그러나 이날은 유독 늦었다고 어머니는 기억했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아 아들에게 다시 전화하자 전화를 받은 남성이 아이가 다쳤다며 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했고, 도착한 병원에서 아이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날 평소와 달리 새롭게 등록한 학원이 일찍 끝나 친구들과 PC방에서 놀다가 11시 30분경 집으로 가기 위해 나왔다. 그리고 20분을 기다려도 마을버스가 오지 않자 11시 50분쯤 경기도까지 가는 버스틀 타겠다고 걸어갔다

 

이에 사망 전 인택군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친구는 "그날 따라 택시비를 빌릴 수 없어서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누군가에게 쫓겨 언덕길로 향했고 그 곳에서 살해 당했다. 이를 목격자인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이 목격했다. 그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도로를 보자 낯이 익은 누군가에게 쫓겨 도망가고, 그 뒤로 두 명의 남성이 쫓아갔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뒤를 쫓았던 남성 두 명이 반대편에서 달려와 자신들이 달려왔던 방향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목격자는 탐문 수사를 펼치던 경찰에게 그날 자신이 보았던 인택군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진술했고, 그의 뒤를 쫓은 것이 김군과 정군이 맞는지 확인까지 해주었다.

당시 형사는 학교에서 교우관계가 좋지 않은 이들을 조사했고 그 안에서 112에 거론한 이름과 비슷했던 김군과 친구들이 지목한 정군을 유력한 용의자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에 정군은 "감군이 때려 주자고 제안하자 안 좋은 감정이 있었는데 잘 됐다고 생각해서 쫓아갔다"라고 진술했고, 김군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서 만나면 손 봐줄 생각으로 칼을 갖고 다녔다"라고 진술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우연히 사건 당일 만났고 복수를 하자고 모의를 하던 순간마주쳐 김군이 가지고 있던 칼을 갖고 위협하자  도주, 겁만 주려고 했던 칼에 놀라 덤벼들어 그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장 검증 후 김군과 정군은 앞서 자백했던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태도가 달라졌다"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아닌 다른 이가 범인이라 보기 어렵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제작진은 인택군과 김군, 정군을 아는 이들과 만나 평소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김군과 정군에 대해 지인들은 "착한 친구였고 그런 애가 사람을 죽였다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럴 애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당할 아이 아냐. 잘 베풀고 좋은 친구였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친구들은 당시 이 사건을 학폭의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몰고 가는 언론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세 사람 모두 학교폭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

제작진은 김군과 정군의 강압수사로 인해 허위 자백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경찰들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이에 경찰들은 "강압수사가 벌어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라며 "가혹 행위는 없었고 어린 아이들이라 우리의 수사가 강압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겠으나 그걸로 허위 자백을 할 리는 없다"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들은 김군과 정군이 분명 범인일 것이라며 "112신고에서 죽어가는 애가 특정인을 이야기했다. 그게 뭐겠냐"라고 마지막으로 남긴 음성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범죄심리 전문가는 "112 신고 내용만 가지고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은 확증 편향적이 수사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건 현장에서 찾아낸 범행도구에는 누군가의 지문이 없었을까? 당시 경찰은 요철이 심한 손잡이에서는 누군가의 지문이 나올 수 없다며 목격자 진술과 112 신고 음성에 더욱 기댈 수 밖에 없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는 실험 결과 진실로 들어났다. 당시 범행도구로 사용됐던 칼과 비슷한 재질의 칼 3자루로 실험을 진행하자 어떤 지문도 검출되지 않았던 것.

제작진은 목격자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실험도 진행했다.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서 목격자가 한군의 뒤를 쫓는 이들의 인상착의를 보는 것이 가능했을까? 실험 참가자들은 어떤 것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이에 전문가는 "수갑 찬 피고인을 봤을 때 범인일 수 있겠다 생각하고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많은 사건들이 목격 진술 오류 때문에 범인으로 잘못 지목되어 억울한 일을 당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전문가는 목격자가 김군을 지목한 이후의 진술에 의아함이 있다고 했다. 최초진술에서 목격자는 얼굴을 잘 모른다고 하는데 이후 구체적이고 김군과 흡사한 진술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이는 진술 당시 질문 때문에 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학대를 가하지 않아도 허위 자백은 성인들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강요가 계속되고 압박이 오면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밝혀지겠지' 하고 오히려 더 쉽게 수긍하기도 한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김군은 무고죄로 고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1년 동안의 재판으로 지친 부모님을 보자 욕심내기 어려웠다"며 그냥 모른 척 살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제작진은 정군과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는 "난 그 사건과 전혀 연루가 안 되어 있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당시 김군과 정군이 함께 용의선상에 오른 이유는 사망하기 전 함께했던 철수군의 진술 때문이었다. 철수군은 초기 조사와 달리 며칠 후 두 사람이 쫓아가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던 것.

그러나 이에 철수군의 아버지는 "얘가 범인도 아닌데 감금하고 진술을 강요했다"라며 감금과 폭행으로 인한 강압에 진술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프로파일러는 이 사건에 대해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나 의아해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피해를 당할 거라는 생각이 커서 도움 요청하기가 더 힘들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무작정 도주했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또한 "면식범이 아닐 확률이 높다. 마지막까지 살인을 확인하지 않고 도주했는데 면식범이면 살아서 신고할 가능성이 있어서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그리고 범행도구를 유기한다는 것은 범행도구가 발견되더라도 자신이 지목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제작진은 유일한 단서인 칼에 주목했다. 당시 범행도구로 사용된 칼을 찾아낸 제작진. 그리고 이 칼은 전국의 낚시용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런 칼을 가지고 다닐만한 이는 없었을까 수소문하던 중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광진구에서 원조교제 사건으로 유명해진 형들이 있다. 그 형들 중에 나이 많은 형들 2명이 칼을 가지고 다녔다"라며 그들이 김군, 정군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제보자는 "칼 갖고 있는 사람들 누가 있냐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라고 했다.

전문가는 이 사건에 대해 "자백이 증거의 왕이라는 중세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게 원인이다. 적어도 검찰 단계에서 자백 정도는 확인을 하고 갔어야 한다. 이 사건은 무죄 판결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건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민사적 국가배상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잘못을 입증하는 것은 어렵다. 이는 불가능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수사기관의 잘못을 입증하는 책임을 국가에 전환하는 식의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일침했다.

제작진은 한군의 어머니를 찾아 취재 결과를 전했다. 이에 한군의 어머니는 "김군이 범인이 아니라고 해도 내 아이는 살인을 당했다는 것은 변함없다. 그 장소에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머릿속에 눈 속에 그 사건이 남아있을 것이다"라며 "아들에게 엄마는 끝까지 범인을 찾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수사기관의 오판으로 진범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고 판단되면 의무적으로 재수사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며 부디 재수사가 시작되길 빌었다. 또한 그 시작이 이 방송이 되길 바라며 사망 사건에 대한 제보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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